튜링과 그 후계자들, 가보지 않은 길 걸어 AI 시대 선도

May 16, 2021

미국 인공지능 프로젝트의 시발점이 된 1956년 다트머스 워크숍 참가자들. 이들 중 마빈 민스키(가운데)와 존 매카시(오른쪽 둘째), 알렌 뉴웰과 허버트 사이먼 4명이 튜링상을 받았다. 벨연구소에서 MIT 교수로 자리를 옮긴 클로드 섀넌(오른쪽)은 정보이론의 아버지로 불린다. 나다니엘 로체스터(왼쪽 둘째)는 IBM 수석 아키텍트 출신. [사진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우리는 왜 독일 바이오앤테크와 미국 모더나 같이 mRNA 백신을 못 만드는가? 과학 분야 노벨상과 튜링상을 받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다. 우리의 교육, 연구, 산업화 생태계가 산업화 과정에서 익숙해진 추격자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2차대전 암호해독 영웅 튜링

70년 전 ‘생각하는 머신’ 연구

미, 다트머스 워크숍이 AI 개척

참석자 중 4명이 튜링상 받아

도전 없이 따라가기 바쁜 한국

코로나 백신 개발 경쟁서 뒤져

수월성 보이는 젊은 과학자 믿고 지원

 

몇 년 전 독일 과학한림원장에게 독일이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비결을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잠재적 수월성을 보이는 젊은 과학자들이 가 보지 않은 길을 겁 없이 도전하고 끝없이 실험할 수 있게 지원한다는 것이다. 추격자 시스템에서는 실행하기 어려운 전략이다.

컴퓨터 사이언스(CS)에는 노벨상이 없다. 세계 컴퓨팅머신학회(ACM)는 1966년부터 CS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영국 과학자 알랜 튜링의 이름을 딴 상을 수여한다. 구글이 매년 100만 달러의 상금을 지원한다.

1912년 영국에서 태어난 튜링은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한 후 1936년 ‘튜링 머신’이라는 가상의 컴퓨터 모델을 만들어 CS의 이론적 기초를 세웠다. 1938년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영국에 돌아온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주인공이 튜링이다.

 

전후 영국에서 디지털 컴퓨터 설계를 주도한 튜링은 1950년 발표한 ‘컴퓨팅 머신과 지능’ 논문에서 생각하는 머신을 문제로 제기했다. 튜링은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정형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게임을 통해 제3자가 기계와 사람을 구분하는 튜링 테스트를 제안했다.

이 테스트는 장막 뒤에 사람과 기계를 두고 제3자가 문자 대화를 통해 기계와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다. 누가 기계인지 사람인지 판단하기 힘들면 튜링 테스트에 성공한 것이다. 인간 인지 모사 능력을 테스트하는 이른바 ‘이미테이션 게임’이다.

튜링의 이 논문은 인공지능(AI) 연구의 시작을 알린 역사적 논문이다. 70년이 지난 지금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을 모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튜링 테스트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2015년 영국 정부는 평등과 다양성, 포용의 가치를 내세우며 새로 떠오르는 데이터사이언스를 진흥하기 위한 ‘국립 알랜 튜링 연구원’을 영국 도서관 내에 설립했다. 지난달 25일 영국 중앙은행은 디지털 시대의 기초를 놓은 튜링의 사진이 담긴 50파운드 지폐를 내놓았다.

1955년 미국 다트머스 대학의 젊은 수학과 교수 존 매카시는 튜링의 생각하는 머신의 연장선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고 전문가 워크숍을 구상하게 된다.

1955년 그는 1927년생 동갑내기인 프린스턴대학원 후배 마빈 민스키와 함께 벨연구소의 클로드 섀넌, IBM의 나다니엘 로체스터를 끌어들여 10명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다트머스 인공지능 연구 계획서’를 만들고 록펠러재단에 지원을 요청했다. 전문가 중에는 CMU의 앨런 뉴웰, 허버트 사이먼이 포함됐다.

이 다트머스 워크숍은 록펠러재단으로부터 7500달러를 지원받아 1956년 여름 두 달 동안 진행됐다. 인공지능 연구의 방향이 워크숍에서 어느 정도 정리됐고 참가자들은 인공지능 프로젝트를 잇달아 시작했다. 이른바 미국이 주도하는 인공지능 시대의 시작이다.

다트머스 워크숍 참석자 중 4명이 튜링상을 받았다. 1969년과 1971년에는 마빈 민스키와 존 매카시가 각각 수상했고, 1975년에는 알렌 뉴웰과 허버트 사이먼이 공동 수상했다. 허버트 사이먼은 1978년 제한된 합리성에 기반한 의사 결정으로 노벨 경제학상도 수상했다.

다트머스 워크숍 이후 MIT로 옮긴 매카시는 1962년 스탠퍼드대로 옮길 때까지 MIT 교수가 된 민스키와 함께 MIT 인공지능 연구의 초석을 놓았다. 인공지능 언어 LISP가 이때 개발됐다.  

앨런 튜링의 사진이 담긴 영국 50파운드 지폐  

 

스탠퍼드대에서 매카시는 조지 포사이스 교수가 1961년 수학과 내에 만든 CS디비전의 세 번째 교수였다. 1965년 스탠퍼드 수석부총장 터만의 지원 하에 CS디비전이 CS학과로 독립했다. 1968년 알고리즘 분야의 천재 도널드 크누스가 스탠퍼드 교수가 됐다. 크누스는 그의 동료 로버트 플로이드를 교수로 데려왔다. 크누스와 플로이드도 각각 1974년, 1978년 튜링상을 받았다.

매카시와 크누스는 스탠퍼드가 CS 분야에서 세계 제일이 되도록 이끌었다. 필자는 스탠퍼드에서 공부하면서 이 두 사람의 절대적 권위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존 매카시는 노환으로 사망할 때까지 논리학을 기반으로 한 상식 추론을 평생 연구했다.

클로드 섀넌은 다트머스 워크숍 직전 매카시와 함께 디지털 시스템의 기본인 오토마타 이론의 특집을 편집했다. 2차 세계대전 승리를 이끈 영웅 버니바 부시의 MIT 제자인 그는 전쟁 기간 벨연구소에서 암호를 연구했다.

미국을 방문한 튜링을 만나 토론했다. 1958년 벨연구소에서 MIT 교수로 자리를 옮긴 섀넌은 암호학과 정보이론의 아버지로 불린다. 미국 전기전자공학회 IEEE는 그의 이름을 딴 섀논상을 만들었다.

지난 4월 1일 ACM은 2020년 튜링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튜링상 연도는 발표 시점보다 심사 시작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 스탠퍼드대의 제프리 얼만과 컬럼비아대의 알프레드 에이호가 수상했다. 1967년 벨연구소에서 같이 연구해 만든 컴파일러와 알고리즘 분야의 기여와 CS 교육에의 기여가 수상 이유다. 벨연구소 연구를 바탕으로 두 사람은 1974년, 1977년에 각각 알고리즘과 컴파일러 교과서를 출판했고 이 두 권의 책은 CS 교육의 바이블이 됐다. 컴파일러 교과서는 표지의 용 그림 때문에 드래곤북이라고도 불린다. 최신판에는 젊은 저자들이 추가됐다.  

 

구글 창업한 페리지·브린 연구 지도

얼만은 알고리즘과 컴파일러뿐만 아니라 데이터베이스, 머신러닝, 초고집적회로 등 거의 모든 컴퓨터 분야에 논문을 내고 교과서를 저술했다. 한창때는 매년 새로운 주제로 책을 출간했다.

그는 항상 현실 문제를 추상화한 이론 연구를 했다. 얼만의 이런 강점은 현실 세계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나의 스탠퍼드 지도교수 지오 위더홀드와 완벽한 콤비를 이루었다.

미 국방부 DARPA에 파견된 위더홀드가 디지털 라이브러리 이니셔티브(DLI)를 NSF, NASA와 협력해 만들자 얼만은 스탠퍼드 DLI 프로젝트의  연구원이 되어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공동 지도했다. 이들이 개발한 웹 검색엔진으로 구글을 창업하자 얼만은 이 회사에 자문 위원으로 이름을 올려 지원했다.

2002년 이론가인 얼만은 방문교수인 내가 맡고 있던 스탠퍼드 세미나에서 믿어지지 않는 강연을 했다. 교수가 꼭 정부 연구비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벤처 캐피털 지원을 받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그의 강연은 실리콘밸리 창업을 준비하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설립한 실리콘밸리 벤처에도 자문위원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스탠퍼드대는 튜링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이다. 지난 4년간은 딥러닝 분야의 아웃라이어가 수상한 2018년을 제외하고 매년 스탠퍼드대 수상자가 나왔다. 2019년에는 패트릭 한라한 교수가, 2017년에는 2000년부터 16년간 총장을 역임한 존 헤네시 교수가 튜링상을 받았다.

두 사람 모두 스탠퍼드대 연구로 창업해 성공했다. 토이 스토리 애니매이션 영화를 만든 픽사의 창업 멤버였던 한라한은 2003년 데이터 시각화 소프트웨어 타블로를 공동 창업했다. 타블로는 2019년 세일즈포스 닷컴이 157억 달러에 인수했다. 헤네시는 새로운 MIPS 컴퓨터 아키텍처 연구를 바탕으로 1983년 MIPS 컴퓨터 시스템을 창업해 성공했다. 그 후 이 경험을 살려 총장이 돼 스탠퍼드를 세계 최고의 혁신 대학으로 발전시켰다.

튜링상 수상자들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문제에 도전해 새로운 길을 연 용감한 선구자들이다. 디지털 대변환은 이들에게 명예뿐만 아니라 부도 가져다주었다.

변혁의 시기에는 개방과 혁신을 추구하는 도전적 아웃라이어가 어느 순간 주도자가 된다. 팬데믹과 미·중 디지털 패권 경쟁 때문에 불확실성이 커진 이 시기에 우리도 도전적 아웃라이어가 기존의 아성을 넘어 미래를 주도할 수 있게 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서울대 전기공학사, 계측제어공학석사, 스탠퍼드대 박사.

2014~19년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 초대 원장.

2002년 실리콘밸리에 실험실벤처를 창업했다. 이 회사를 인수한 독일 기업 SAP의 한국연구소를 설립해 SAP HANA가 나오기까지의 연구를 이끌고 전사적 개발을 공동 지휘했다.

[원문링크]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4042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