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규제 막혀 AI인재 못 늘려… 대선 주자들, 실리콘밸리 한번 가보라”

September 2, 2021

[박순찬이 만난 사람] 경북대·전남대와 인재 양성…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

대선을 7개월 앞두고 ‘바지’와 ‘쥴리’ 얘기만 판치는 상황에서, 차상균(63)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과 연락이 닿았다. 최근 서울대가 경북대, 전남대와 데이터사이언스 발전을 위한 업무 협약식을 체결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서울대에서 AI(인공지능)·빅데이터 분야의 석·박사 인재를 키우는 그는 수도권 정원(定員) 규제 때문에, 면접 때마다 훌륭한 인재가 와도 뽑지 못하는 현실을 종종 토로하곤 했었다. 서울대는 학생이 몰려도 정원이 모자라고, 지방대는 정원이 남아 돌아도 학생은 없는 상황에서 세 학교가 손을 잡았다는 소식이 신선했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은“청년 실업 문제도 결국‘내가 배운 것’과‘변화하는 산업’간의 괴리 때문”이라며“각자 배운 전문 지식에 AI, 빅데이터, 컴퓨팅을 접목하는 이른바‘ABCD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차 원장은 “규제 때문에 서울대 혼자서는 키울 수 있는 인재 풀이 한정돼 있다”며 “서울대가 그동안 쌓았던 모든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판을 키워 광범위하게 AI 인재를 키워보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미·중 기술 패권 다툼이 첨예하게 벌어지는 ‘전략적 변곡점’에서 인구 5000만 나라가 생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가 전략의 틀을 어떻게 새롭게 짜야 하는지 말하는 대선 후보가 한 명도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도 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에서 차 원장을 만났다.

 

한국, ‘관성의 저주’에 빠졌다

-경북대, 전남대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건 무슨 의미인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을 준비하는 경북, 전남대와 함께 ‘삼각편대’를 꾸린 것이다. 세 학교가 협력해 AI 인재를 함께 가르치고, 협력 프로젝트도 할 생각이다. 세 학교 학생들과 다 함께 선단(船團)을 꾸려 실리콘밸리에 나갈 생각도 갖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베트남, 인도네시아로 이 모델을 확산시켜 그 인재들까지 함께 이끌면 하나의 커다란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정원 규제의 우회로를 찾은 셈인가.

“우리가 독점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알다시피 지방대는 거의 무너진 상황이다. 한 교수가 ‘로스쿨 같은 붐을 한 번 더 일으키면 지방도 살 수 있다’고 하더라.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이 지역 거점 대학을 변화시키고 살리는 원동력이 될 거라고 본다.”

-우리가 ‘전략적 변곡점’에 있다고 했다.

“‘전략적 변곡점’은 과거의 룰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큰 변화가 일어난 시점을 말한다. 디지털 대전환 그리고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을 중심으로 세계 질서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 상응하는 큰 변화가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무얼 하고 있나. ‘제로섬 게임’에 불과한 국내 정치 이슈에 빠져 국가 전략을 개편할 시기를 놓칠까 걱정이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이 구글의 소형 인공지능(AI) 기기‘코럴’을 활용한 학생들의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다. /박순찬 기자

-한국 사회의 문제가 뭐라고 보나.

“사회 전체가 ‘관성(慣性)의 저주’에 빠져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성공을 거둔 경험, 그 관성에 빠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누구는 ‘재벌’ 때문이라고 하던데, 그게 아니라 사회 시스템 전체의 문제다. 정부도, 민간 기업도 관료화돼 있다. ‘칸막이’도 너무 많다. 칸막이가 있으면 실험 정신이 사라지고 의사 결정도 이뤄지지 않는다. 판에 박힌 것만 하려 하지 거기서 벗어난 것, 안 해본 것은 안 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새로 나오는 교수 자리는 적어도 두 개의 과(科)에서 월급을 받는다. 학문의 경계가 없다는 뜻이다.”

-오래된 문제다.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교육’이 설루션(해법)이라고 본다. 관성에서 벗어나려면 새 피[血]를 만들어 사회 전체에 확산시켜야 한다. 핵심은 ‘새로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느냐, 기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다. 젊은이들에게 시대에 맞는 교육을 하고, 미래를 불안해하는 30~50대들에겐 재교육을 시켜주는 게 중요하다.”

-시대에 맞는 교육이 뭔가.

“이른바 ABCD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Big Data), 컴퓨팅(Computing), 그리고 도메인 놀리지(Domain Knowledge·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다.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지식들이다. 만약 생명과학이나 경제학을 공부했다면 D에 대한 이해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ABC를 추가로 배우면 새로운 걸 할 수 있다.”

 

ABCD 아는 인재 필요

차 교수는 작년 3월부터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의 초대 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 대학원은 수년째 미달이다. 지원자가 없어서다. 작년 일반대학원의 신입생 충원율도 80.4%에 그쳤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AI·빅데이터를 가르치는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은 2년째 5~6대1의 경쟁률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왜 거기엔 학생들이 몰리나.

“국가적으로 AI 인재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인데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원자들의 면면이 다양하다. 경찰대 졸업한 현직 경찰부터, 수학 전공한 정부 부처 사무관, 사범대 출신의 교사, 인문대 중문과 출신도 있다. 첫해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지원하기도 했다. 다양한 인재가 열의를 가지고 스스로 변신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개인적으로 감동스럽다.”

-산업계마다 AI 인재가 부족하다고 한다.

“얼마 전 반도체협회에서 반도체 산업을 이해하는 데이터사이언스 인력을 키워달라고 하더라. 수천억 원짜리 비싼 장비들이 온갖 데이터를 뿜어내는데 이걸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다. 중소벤처기업부도 제조 AI 한다고 하는데 거긴 돈이 없어서 사람 그림자도 보기 힘들다.”

-서울대가 앞장서서 AI 인재 키워야 하는 것 아닌가.

“앞서 말했듯 정원 규제에 붙잡혀 있다.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은 한 해에 석사 40명, 박사 15명으로 정원이 제한돼 있다. 매년 훌륭한 학생들이 몰리는데 정원 때문에 놓치는 인재를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다. 국가적으로 AI 인재가 부족한 마당에 정원 규제 때문에 못 가르치는 게 말이 되나.”

-정부에서 규제를 풀어줄 법도 한데.

“수없이 얘기했지만 소용없다. 최근 교육부에서 AI 같은 첨단 분야는 예외를 뒀지만, 이마저도 수도권 총 정원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결국 학내 구조조정을 하란 얘긴데 쉽지 않다. 정원이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잘되는 곳은 더 주고, 남는 곳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회수하면 되지 않나. 정원은 젊은이들이 변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건데, 왜 정부가 그걸 아끼려는지 모르겠다.”

-수도권 쏠림을 막겠다는 규제의 취지도 있지 않은가.

“지금 전체적인 학생 수가 줄어들고, 사람도 산업도 다 지방을 탈출해서 올라오는 게 현실이다. 지방분권을 말하는데 인재가 없는 지방분권은 불가능하다. 어차피 첨단 분야는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곳이 한정돼 있다. 특히 사회적 수요가 큰 상황에서 정원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정원이 얼마나 필요한가.

“지금 40명인 석사과정 정원을 500명 정도로 늘리고 싶다. 불문과든 동양사학과든 다양한 전공의 학부생이 석사는 데이터사이언스를 할 수 있도록 경계를 터주자는 것이다. 서울대 내부에서도 뽑고, 외부에서도 200~300명을 뽑으면 그 안에서 AI 교수도 나오고 자율주행 배 만드는 사람도 나오지 않겠나. 그게 대학이 해야 할 일이다.”

-학생 정원만 풀어주면 문제가 해결되나.

“서울대 교수 정원이 2200명쯤 되는데 두 배로 늘려야 한다. 변화의 속도 때문이다. 서울대 교수가 되면 20년쯤 일한다. 변화의 주기가 20년이란 얘기다.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바뀌는데 대학이 느린 이유다. 5년 안에 서울대 교수를 두 배로 늘린다치면, 1년에 400명씩 새로 뽑는 거다. 학교가 완전히 달라질 거다. 교수를 2배 늘린다고, 예산이 2배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글로벌 기업·연구소에서 일하는 핵심 인재를 50대50, 70대30 겸임 근무 조건으로 뽑으면 된다. 월급은 연구소와 대학에서 반반씩 받는 거다. 최근 구글 연구자를 우리 대학원 교수로 뽑았는데, 서울대 최초의 ‘50대50 겸직 교수’였다. 교수가 늘면 학교의 연구 기능이 커지고, 교수가 창업해 나가더라도 여유가 생긴다.”

 

데이터 100만 인재 키워야

-한국의 AI 인재가 얼마나 부족한가.

“독립국가의 위상을 유지하려면 디지털 전환을 이끌 수 있는 인재 100만명은 키워야 한다. 지금 수도권 정원에 붙잡혀 있을 시간이 없다.”

-100만 인재를 키우기 위한 복안이 있나.

“군에서부터 할 수 있다. 1년에 20만명 넘게 현역병으로 입대하는데, 그들에게 디지털 교육을 시키는 거다. 20개월 안팎 군에 복무하면서 파이선(프로그래밍 언어) 배우고, 드론 날리고 컴퓨터 비전(시각)도 돌려보고 실제 현장에서 활용해보는 거다. AI 반도체를 활용해 야간에 AI를 대신 보초 세우고 밤에 공부해도 된다. 교관은 AI·빅데이터를 배운 대학원생을 병역 특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 이런 얘기는 듣기 어렵다.

“대선 주자들의 시야가 국내, 과거에만 갇혀 있는게 아쉽다. 과감하게 실리콘밸리에 가서 1주일이라도 지내고 오면 좋겠다. ‘디지털 대전환의 진앙’에서 과학기술과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직접 보라는 뜻이다. 이번 대선에선 미래에 베팅하는 사람을 뽑고 싶다.”

 

☞차상균1958년 부산 출생.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 스탠퍼드대에서 전기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작년 3월부터 AI·빅데이터 인재를 육성하는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 초대 원장을 맡고 있다.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였던 2000년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바탕으로 ‘TIM(Transact in Memory)’이란 교내 벤처를 창업했다. 2002년 실리콘밸리로 진출했고, 독일 소프트웨어 기업 SAP에 회사를 매각했다. SAP의 주력 서비스인 HANA(하나) 플랫폼이 그의 기술을 토대로 개발됐다.

 

[원문링크] 조선일보: “정원규제 막혀 AI인재 못 늘려… 대선 주자들, 실리콘밸리 한번 가보라” – 조선일보 (chosun.com)